찬송가: 484(433)장 –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욥기 32-37장은 엘리후의 말입니다. 엘리후는 람 족속 부스 출신 사람으로, 욥의 세 친구와 달리 아버지의 이름(바라겔)이 함께 소개됩니다. 그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마무리된 이후에 등장한 인물로, 이들 중 가장 젊습니다. 엘리후가 화를 낸 이유는 욥이 자신이 무고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세 친구 모두 그러한 욥을 상대로 제대로 된 논박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엘리후의 발언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욥의 탄식과 질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답변을 예비하고, 또 그것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1)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2)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3)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있다가 (4)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5)’
지혜 전통에서는 사람들이 연장자의 경륜과 지혜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연소자는 연장자 앞에서 말을 조심합니다. 그런데 연장자인 욥 친구들의 발언은 엘리후를 실망시켰습니다. 더는 침묵할 수 없었던 엘리후는 자신이 연소자임에도 발언을 시작하는 경위를 밝힙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8)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9)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10)’
사람이 지혜롭게 되고 정의를 깨닫는 것은 세월이나 경험, 학식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참된 지혜와 담대함을 얻습니다. 이를 근거로 엘리후는 자신의 긴 발언을 시작합니다. 나의 얕은 지혜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마음과 하나님의 숨결로 이웃에게 다가가는 복된 날이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