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528(318)장 –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죄인 취급받는 세리였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실 때, 삭개오도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작은 키와 몰려든 인파로 인해 그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자 했을 뿐인데, 예수님은 특별한 관심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5)’ 예수님은 죄인의 집에 기꺼이 머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죄인일 뿐이지만, 예수님께는 구원 은혜가 필요한 한 영혼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의 2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차별없이 구원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은혜로운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항구나 공항에 세관이 있는데,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여리고에 세관이 있었습니다. 세리는 자기 마음대로 일정액을 세금으로 매겨 갈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세리를 창녀와 같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창녀를 육체를 파는 존재로 그리고 세리는 양심을 파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가 무리중에 있어도 투명인간 최급했습니다. 삭개오는 많은 돈을 갈취해 부자가 되면 만족이 올 줄 알았지만 사람들로 부터 소외당하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처럼 사람들에게 철저히 소외당하는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차별이 없는 은혜로운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인종이나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기로 작정하신 당신의 자녀를 차별없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동거하기 원하시는 부르심입니다. 5절 후반에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누구에게 전화해서 부르고 초대하는데는 보통 목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뭔가 필요한 것을 받기 원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해관계를 따져서 사람을 부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 속담중에 “화장실 들어갈때랑 나올때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필요할때는 온갖 친절을 베풀며 부르지만 필요 없을땐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한번 부른 사람은 끝까지 함께 거하시며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1장28절에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자녀를 부르시고 함께 거하시며 쉬게 하십니다. 본문 7절에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사람들이 왕따취급하고 죄인취급하는 세리장 삭개오를 부르시고 그와 함께 지내려 가시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그가 어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관치 않고 당신이 부르신 자와 함께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떠한 흉악한 죄인이라도 차별없이 구원으로 부르시는 은혜로운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동거하기 원하시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에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한(6절) 삭개오는 소유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누구에게든 빼앗은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하자, 예수님은 그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불러주심의 놀라운 특권과 은혜에 감사하고 택한 백성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