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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예수 하나님의 공의

 

시편 2편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크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집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이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인간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은 ‘창조론’을 믿지만, 다른 부류는 ‘진화론’을 믿습니다.

 

신학적으로도 ‘하나님의 주권’vs ‘인간의 자유 의지’는 2000여년에 걸쳐 가장 큰 논쟁입니다. 대표적으로 4세기 ‘어거스틴vs 에라스무스 논쟁’과 16세기 ‘칼빈vs아르미니우스 논쟁’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어거스틴과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을 주류신학으로 봅니다. 반면 에라스무스와 아르미니우스 신학의 중심에는 ‘인간이 주인’이라는 사상이 깔려있는데 오늘날의 자유주의와 인본주의 신학이 그 대표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지금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8:28)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해석이 됩니다. 전에는 신앙생활을 하며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하고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을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주권적 관점에서 보니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해석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복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10)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11) 그의 아들에게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12)

 

세상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얽매임으로 여기고, 어떻게든 거기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칩니다.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께 예배드리는 것을 속박으로 생각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1)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2) 우리가 그들의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3)

 

그런데 질그릇이 토기장이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려하면, 질그릇을 빚은 토기장이가 볼때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피조물인 내가 주인이 되려할 때 하나님은 웃으십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4)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오히려 대적하는 세상을 보고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그분을 대적하는 나라들을 철저하게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7)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리니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8)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9)

 

만왕의 왕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 우리에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생명이 유지되듯이,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안에 거할 때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만이 온 세상의 왕이심을 소리 높여 선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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