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53(506)장 –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본질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본질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치우치다 본질을 소홀히 하게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서는 율법주의와 천사 숭배 그리고 금욕주의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의 준수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음식법과 절기법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건을 예시하는, 장래 일의 그림자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16)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17)’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기능이 정지(완성)된 율법을 더는 준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골로새 교회에는 거짓 겸손과 천사숭배를 가르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18)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가느니라(19)’ 그들은 천사가 그리스도보다 우월하다고 가르쳤고, 그들이 소유한 거짓 환상을 하나님의 비밀이라며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았기에, 그들 안에는 참된 생명이 없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금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때 쓰이고 없어질 음식 규정에 집착하는 것은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에 거룩하니, 성도는 철학이나 금욕주의나 천사 숭배 같은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20)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21)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22)’
금욕주의가 ‘자의적 숭배’ 곧 꾸며 낸 경건과 거짓 겸손과 육체의 욕망을 통제하는 지혜로운 수단처럼 보여도, 사실 육체의 정욕을 다스리는 데는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23)’
신앙생활의 본질은 율법주의, 천사 숭배, 금욕주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깨닫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아 날마다 우리의 신앙이 강건하게 자라가길 소망합니다.